[책리뷰]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감상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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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위어가 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전기

 

 

중세시대에 드물었던 여성 영주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에 흥미가 생긴참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전기 책을 찾아서 바로 읽었다. 원래도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작가가 어찌나 철저히 조사를 했는지 엘레오노르의 조상부터 시작해서 당시 남부 프랑스의 풍토, 문화까지 자세히 써놨다. 덕분에 엘레오노르의 생애의 중요한 순간과 사건이 어떤 경위로 일어났었는지 이해하기 수월했다.

 

 

정말 의외였던 점은 엘레오노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이 상당히 이질적이면서 독특했고, 엘레오노르의 아버지가 당시는 보기 드물었던 공부나 후계자 교육을 여성인 엘레오노르에게 시키고,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남성 구혼자들이 엘레오노르가 상속받아야 할 땅을 가로채고 지배할 걱정에 무조건적으로 아키텐은 엘레오노르에게만 귀속시키게끔 조건을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왕을 상대로 말이다.

 

 

예전에 어떤 중세 관련 서적에서 프랑스의 한 수도사가 여성이 남성보다 관리나 경영면에서도 훨씬 유능하고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치다가 이단으로 낙인 찍힐뻔한 적이 있었는데, 이 수도사에게 감화된 영주가 땅을 하사해 최초로 여성 수도원장을 수장으로 둔, 오로지 여성들만을 위한 수도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접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그 계몽적인 수도사에게 땅을 하사한 영주가 엘레오노르의 조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니까 신기했다.

 

또한 이혼은 금기에 가까웠던 중세에 왕족들이 사촌이기 때문에 근친상간이므로 결혼무효 같은 명분을 내세웠던 이혼방법, 11살 차이나는 연하남 헨리와 결혼한 경위와 배경도 흥미로웠다. 

 

 

단점이라면 중세 기록의 한계로 어쩔수 없이 중후반부터 헨리와 자식들 얘기가 주가 된다는 것... 그리고 절판이라 중고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야 한다는 것...

 

 

 

 

 

BBC의 엘레오노르의 생애 초반부를 다룬 라디오 드라마는 여기(링크)에서 들을 수 있다.
소설책 기반이라 내가 읽은 전기책과 다름!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중세사회의 여성은 철저히 종속적인 위치에있었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로마제국의 폐허 위에 하나둘 국가가 생겨났던 이 시기, 인간의 삶은 야만적이고 불안정했다. 정의보다는 힘이 지배했고, 더욱이 남성의 힘만이 의미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은 지배를 받아야 했고, 귀족여인의 주된 역할은 봉건영지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생산하거나 유럽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성의 안주인 역할을 하는 것뿐이었다. 여성의 역할은 '조용히 배우고 집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라는 바울의 설교를 따랐던 교부들의 가르침은 남성의 지배권을 신성시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으로는 기사도와 궁정연애 문화가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을 듯도 하지만, 이 귀족유희에 여성의 종속적 역할을 전도시킬 만한 위력이 숨어있었을 리는 만무했다.

아키텐의 법령은 교회가 공작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제정되었으므로, 대체적으로 여성에게 호의적이었고 영지 안에서만큼은 봉건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여성은 자신의 명의로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고, 물려받은 영지를 자치적으로 다스릴 수도 있었다. 

아키텐의 여인들은 어느 정도 공적인 삶에 참여했으며, 북프랑스의 여성과는 달리 남성이나 주류사회로부터 차단되지도 않았다. 부유한 귀부인들은 우아한 드레스와 차림새로 이름을 떨쳤고, 뺨을 붉게 칠하거나 숯으로 눈썹을 그리고 동방에서 들여온 향수를 사용하는 등 사치를 누리는 것이 일반화되어 교회가 나서서 제재를 가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프랑스 여인들은 신분고하를 떠나 도덕관념이 해이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북프랑스 인들이 생각하기에 아키텐 공국은 그 자체가 거대한 매춘굴이나 다름없었다. 외도한 아내는 다른 지역에서는 감옥형이나 처형을 당했지만, 아키텐에서만큼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아키텐 사람들은 상당히 관대했다.

물론 중세 여인들은 공적인 교육을 받는 일도 드물었다. 귀족가문의 어린 소녀들은 가정이나 수녀원에서 신부수업을 받는 것이 전부였을 뿐, 읽기나 쓰기를 배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녀들이 글을 알게 되면 연애편지를 쓰거나 추잡한 소설을 읽는데 재능을 허비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매우 예외적이었다. 기욤 공작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딸이 어느 정도 공식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고, 엘레오노르는 모국어 읽는 법을 배웠다. 엘레오노르에게 많은 상송을 알려준 베르트랑 드 보른은 엘레오노르가 읽기를 터득했기 때문에 그 곡들이 낯설지 않았다'고 썼다. 또한 라틴어 교습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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